현실성 없는 진단서 발급 기준, 거센 반발
현실성 없는 진단서 발급 기준, 거센 반발
의료계…'환자 본인 국한은 무리, 민원도 속출'
시민들…“환자 의식 있는 기준 무엇이냐?”
  • 최하늘 기자
  • 승인 2018.04.30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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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 최모(42)씨는 지난달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경상대병원에서 양쪽 무릎 수술을 받은 후 법적 입원기간이 지나 개인병원에서 입원 중인 부모님을 대신해 진단서를 발급받고자 경대병원을 찾았다. 하지만 보건복지부 의료법이 개정돼 경대병원 행정관계자의 “의식이 있는 한 본인이 직접 와야 한다. 너무 죄송하다. 이러한 민원이 수없이 들어오는 통에 저희 직원들도 힘든 지경이다”라는 말을 듣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최씨는 “보건복지부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같은 개정안을 마련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좀 더 현실성 있는 의료법 개정을 해야 한다”고 비난했다.

최근 의료기관의 진단서 발급을 규정하는 의료법 제17조에 대해 발급 기준을 완화하자는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이는 보험사 등의 무리한 진단서(진단 내용이 포함된 소견서) 발급 요구를 사전에 막기 위한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각급 의료기관에 '진단서 발급 시, 발급 대상 확인 관련 안내'를 통해 진단서의 경우, 진료기록부 등과 달리 환자의 의식이 있는 경우에는 환자 본인만 발급이 가능하고, 대리인 위임은 불가하다고 밝혔다.

다만 환자가 사망하거나 의식이 없는 경우 환자의 친족에 한해, 환자의 친족이 없는 경우에는 형제·자매에게 예외적으로 발급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발급기준을 두고 의료계 등은 보험회사대리 발급 사례를 복지부가 포착해 선제적으로 계도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되는 반면, ‘현실을 살피지 않고 법적인 테두리만 고수하는 처사’라는 입장이다.

진단서는 의사가 사람을 진찰하고 자신의 의견이나 판단을 표시함으로써 현재의 사람의 생명이나 건강(질병) 상태를 나타낸다.

또 건강상태, 법원이나 보험회사 등 신체의 완전성을 훼손하거나 생리적 기능에 장애를 초래하는 상해를 증명하는 결정적인 증거가 되는 서류이다.

23일 국립경상대병원 관계자는 “거동이 불편한 노모가 직접 진단서를 발급받기 위해 많은 애로사항를 거쳐나가는걸 보면서 ‘제도가 참 불편하게 만들어져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병원은 종합 서비스업인데 현실과 괴리감 있는 규정들이 조금씩 쌓여가면서 병원 경영을 압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병원을 찾는 민원인들과 환자들 사이에서도 이 같은 의료법 17조의 ‘환자의 의식이 있는 경우’라는 대목에서 이는 현실성 없는 구조로 유연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의 목소리와 함께 개선이 필요하다는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시민 강모(34, 평거동)씨는 “의식이 있는 식물인간 환자와 다리 수술을 받아 거동이 전혀 되지 않은 환자도 직접 본인이 진단서 발급을 받아야 하는 경우”라며 “대체 환자가 의식이 있는 기준이 무엇이며, 이는 누구를 위해 강화된 법이냐”며 비난했다.

보건복지부는 처방전 대리 수령과 관련한 유권해석을 통해 "대면 진료가 원칙이지만 가족에 한해 동일 상병·장기간 동일 처방·환자 거동 불능·주치의가 안전성을 인정하는 경우 처방전 대리 수령과 방문당 수가 산정이 가능하다"며 "다만 다른 질환이 있거나 가족이 아닌 제3자(간병인·요양보호사 등)가 요청하는 경우 대리 진료와 처방전 대리 수령이 불가하다"고 판단했다.

또한 의사가 환자를 직접 진찰하고 발급하는 진단서(진단 내용이 포함된 소견서)와 달리 직접 진료나 추가 진료가 필요 없는 '진료확인서(입퇴원확인서)' 등은 환자의 동의를 받은 제3자에게 발급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진단명이 없거나 제출기관이 국한되어 별도로 이용할 수 없는 장애인증명서(소득세법)·의료급여 연장신청서(의료급여법) 등도 동의서·위임장을 활용해 가족에게 발급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