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먹고 갈래?
라면 먹고 갈래?
  • 박도영 경상남도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 구성작가
  • 승인 2021.08.30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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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도영 경상남도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 구성작가
박도영 경상남도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 구성작가

청소년 성교육과 성문화를 주제로 한 연극 대본을 준비하면서 관련 전문가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할 기회가 생겼다. 꽤 긴 시간 동안 진행된 인터뷰 중에서 오래도록 곱씹어 생각하게 된 말이 있었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나왔던 명대사, “라면 먹고 갈래?”이다. 일종의 유혹으로 상징되는 이 짧은 문장 한 줄이 만들어 내는 파급이 상당하다는 사실,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알고 있을까?

성폭력은 모르는 사람으로 인해 일어나는 경우보다 아는 사이, 친한 사이에 일어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이유가 매우 놀랍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두 남녀 간에 성적인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이 ‘성범죄’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 상황을 명확히 보여 주는 문장이 바로 “라면 먹고 갈래?”이다. 혼자 자취하는 여성이 평소 편하게 생각하고 친하게 지내 온 남성에게 “라면 먹고 갈래?”라고 물었을 때, 과연 그 말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일까? 대부분 그 말을 성적 유혹이라고 이해한다. 남성뿐만이 아니라 화자를 제외한 많은 여성들도 말이다. 영화 속에 나온 장면 때문에 중의적인 문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라면 먹고 갈래?”라는 말을 한 여성이 말 그대로 표면적인 의미인 ‘그냥 배가 고프니 우리 집에서 같이 라면 먹고 나서 집에 가.’라는 뜻으로 말을 건넸지만 남성은 우리가 흔히 이해하는 중의적인 뜻으로 이해를 했다면, 그래서 남성이 성적 신체 접촉을 시도하려 했다면 여성의 입장에서는 이 상황이 성폭력일 수밖에 없다. 결국 소통의 문제라는 것이다.

싫다는 말을 부끄러워서 한 번 빼 보는 것이라고 받아들이거나, 반대로 의사를 먼저 밝히면 헤프다는 식으로 이해하는 것,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상대방에게 분명히 의사를 표현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의사를 정확하게 받아들이는 것인데 이상하게 ‘성’과 얽히는 순간부터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우리의 성 문화를 돌아보게 만든다.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밝히는 것처럼 정확한 소통 방법은 없다. 특히 성과 관련되어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좀 더 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성과 관련된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밝히는 것을 두고 ‘싸가지없거나 밝히거나’ 둘 중의 하나로 선을 그어 버리는 우리나라 성 인식의 현실이 매우 서글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