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카크레인 이동열 대표
제일카크레인 이동열 대표
“신뢰를 높이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필요”
  • 최하늘 기자
  • 승인 2021.01.07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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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열 대표
이동열 대표

 제일카크레인은 20여 년이 넘는 오랜 경험과 기술력으로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베테랑 크레인 업체다. 제일카크레인 이동열 대표는 1997년도 크레인 1대로 한우물을 파기 시작해 굵직하고 다양한 공사를 수주하며 명성을 쌓아왔다.
아직도 현장을 누비며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 성실함으로 고객들에게 신뢰도를 얻고 있는 이 대표는 ‘한 가지 일에 빠지면 열정적으로 파고드는 근성이 단점이자 장점’이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이처럼 무언가를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하는 데다 한번 시작하면 절대 포기하지 않는 끈기와 남다른 경영이념으로 오늘날까지 건실하게 성장하고 있는 이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 진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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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비전ㆍ목표부터 소개하면.
= 건설업계뿐만 아니라 평소 중량 및 고소작업(건설 공사 현장에서 높은 곳에서 하는 작업)에서는 없어서는 안되는 감초같은 존재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고 없이 안전에 최선을 다해 소형크레인 업계에서 최고가 되는 것이다.

Q. 회사 설립배경이 궁금하다.
= 남해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다 1988년도에 진주로 옮겨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나왔다. 1997년도 대학교를 졸업할 무렵 IMF 위기가 닥치고 당시 취직도 어려워 기반을 잡지 못하고 있을때였다. 크레인 사업을 하는 지인의 권유로 이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크래인 한 대가 전부였다. 직원도 없었다.

혼자 24시간을 휴일도 없이 열심히 일만했다. 이후에 거래처도 한곳에서 네 곳으로 점점 늘어나고, 카고크레인과 스카이 차량 등 다양한 구색을 갖춰 컨테이너 임대 매매업까지 하며 기반을 잡게 됐다. 올해로 크레인 사무실을 운영한 지 20년을 넘기고 있다.

Q. 위기는 없었나, 어떻게 극복했는지.
= 사업 초기에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값싼 중고 장비를 구입했다. 중장비에 대해 신중하지 못한 짧은 내 판단이었다. 이후 노후된 중고 장비로 인해 사용한 지 일년 만에 안전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장비의 안전은 곧 고객들과의 신뢰도를 얻는 것과 연결된다는 것을 이 계기로 다시 한번 깨닫게 됐다. 사업이라는 것이 무너질 듯 힘든일이 있기 마련이지만 지나고 보니 큰 가르침을 주는 계기가 됐다. 매번 작은 실패라도 교훈으로 삼을려고 노력 중이다. 이는 값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가르침을 얻은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Q. 사업을 유지한 비결은.
= 모든 안전은 산업의 가장 기초가 되는 일이라 생각한다. 안전하지 않다면 작업할 수 없고, 안전할 수 없는 현장이라면 일할 수 없다. 몸이 다치거나 위험한 일을 하는 건 제 신념에 어긋난 일이다.

또 한가지는 사업을 유지하는데 있어 고객과의 신뢰도 중요하지만 장비의 구색도 한 부분을 차지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거래처의 다양한 작업의 맞춤이 신뢰도 향상과 작업능률 및 안전도에 많이 기여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장비 보유와 최고의 작업기술이 사업유지의 가장 큰 비결이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크레인이 안전하게 작업할 수 있도록 그리고 작업자와 크레인의 신뢰를 키우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 진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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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사업 다각화나 계획은.
= 지금은 전문적인 기술 하나로는 사무실을 운영하기에는 힘든 시기이다. 컨테이너 임대 매매업을 조그마하게 유지를 하고 있지만 향후 캠핑카나 캠핑트레일러 사업도 준비 중에 있다.

Q. 최근 크레인 안전사고가 빈번하게 발생되고 있다. 원인이 있나.
= 원인으로는 외주화, 규제 완화, 안전검사 미흡 등이 반복되는 사망 사고의 원인으로 대두되는 문제이다. 그러나 이같은 문제가 아니라도 현장에서 크레인 작업은 늘 위험이 따른다.

20년째 이 업종에 종사하고 있지만 늘 안전을 지키기 위해 현장에 가면 늘 기도하고 사람으로서 해야 할 최선의 노력을 해야 사고를 막을 수 있다. 위험하고 어려운 작업일수록 일에 대한 욕심도 버리고 크레인에 올라야 한다. 이런 시범적인 것들을 모두 갖춰야지만 무사히 크레인에서 내려올 수 있다.

Q. 최근 코로나19로 많은 활동이 제한되고 있다. 업무 스트레스는 어떻게 해소하고 있나
= 사업을 하던 중 2014년도 부도 위기가 있었다. 당시 회사라는 곳을 벗어나고 싶어 친구들과 무작정 밴드를 결성했다. 그러나 밴드도 오래가지 못했다.

이후 악보만 있으면 안 되는 노래가 없다는 색소폰을 시작하게 됐다. 막상 색소폰을 불어보니 소리가 너무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색소폰을 알아가며 날로 더 재미를 느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소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크게 다가왔다. 이러한 매력 때문인지 색소폰에 한번 매진을 했다 하면 5시간씩 연습하는 것은 기본이고 어떤 때에는 날을 새며 해가 뜨는 줄도 모르고 연습했던 일이 비일비재하다.

© 진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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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지역에서 색스폰 연주자로도 유명하다고 들었다. 계기가 있나
= 연주자라고 하면 조금 부끄럽다. 몇 년 전부터 자신만의 색소폰 약력을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에 출전하기 시작한 경연대회는 처음부터 좋은 결과물을 안겨주지 않았다. 처음에는 참여상이나 3등, 4등을 많이 했다. 1등은 한 번도 못했다. 그렇지만 대회에 나가기 위해 음악을 공부하고 곡을 집중적으로 만들며 거기에 대한 결과물이 있다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점점 더 열의를 가지게 됐다.

Q.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
= 우선 사업적으로 경험과 기술, 가격으로 경쟁력을 높여가며 즐겁게 일하는 것이 목표다. 음악적으로는 색소폰의 본고장인 아돌프삭스 동상 앞에서 버스킹을 한 번 해보는 게 꿈이자 목표이다. 그리고 아돌프삭스 색소폰 콩쿠르에 나가는 것이다. 또 집안 어른이신 색소포니스트이자 작곡가 이봉조의 색소폰 기념관 건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