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박물관, 송응창의 ‘경략복국요편 역주서’ 1, 2 발간
진주박물관, 송응창의 ‘경략복국요편 역주서’ 1, 2 발간
임진왜란 당시 명군의 최고 지휘관 ‘송응창’
임진왜란을 명군의 시각에서 풀어낸 국내 최초의 국역서
  • 문평규 기자
  • 승인 2020.11.02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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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의임진전쟁 1, 2권 표지입체 (사진제공=국립 진주박물관)
명나라의임진전쟁 1, 2권 표지입체 (사진제공=국립 진주박물관)

국립 진주박물관(관장 최영창)은 송응창(宋應昌, 1536~1606)의 ‘경략복국요편(經略復國要編)’에 대한 역주서 1, 2를 발간했다. 임진왜란을 명나라의 시각에서 쓴 책으로 1권은 ‘평양수복’, 2권은 ‘출정전야’의 부제를 달았다.

‘쇄미록(瑣尾錄)’에 이은 국립진주박물관 임진왜란 자료 국역사업의 두 번째 결실이다.

국립 진주박물관은 지난 2017년부터 ‘임진왜란자료 국역사업’을 추진했으며 첫 번째 결과물로 오희문의 피란일기인 ‘쇄미록(瑣尾錄)’(전 8권, 사회평론아카데미)을 2018년 말에 출간한 바 있다. 이를 통해 유성룡의 ‘징비록’, 이순신의 ‘난중일기’와 함께 임진왜란 당시 상황을 전하는 조선의 3대 기록물인 ‘쇄미록’의 가치를 재조명할 수 있었다.

이에 국립진주박물관은 2019년부터 올해 말까지 2년 계획으로 송응창의 ‘경략복국요편’ 국역사업을 진행하면서 올해 역주서 두 권을 먼저 선보이게 됐다. 이번에 출간하는 역주서 1, 2권에 이어 역주서 3, 4권인 ‘명나라의 임진전쟁: 강화 논의’와 ‘명나라의 임진전쟁: 전후 처리’, 그리고 원문의 감·표점본은 2021년에 발간함으로써 전 5권으로 구성된 송응창의 ‘경략복국요편’ 국역사업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앞으로 형개(邢玠)가 쓴 ‘경략어왜주의(經略御倭奏議)’의 국역이 완료되면 그동안 접근이 쉽지 않았던 중국의 귀중한 자료들이 임진왜란사 연구에 본격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1595년(선조 28) 전후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경략복국요편’은 임진왜란 초기 명나라 군대의 속사정을 가장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다. ‘경략복국요편’이란 경략으로 임명된 송응창 본인이 조선의 영토를 회복시킨 과정을 보여주는 주요 문서를 엮은 책이라는 의미다. 중국(명나라) 역사에서 처음으로 경략의 직책을 부여받은 송응창을 필두로 고양겸(顧養謙)과 손광(孫鑛), 형개 등 모두 4명의 경략이 임진왜란·정유재란 시기 임명되었다. 일본군을 방어하는 데 필요한 제반 업무를 총괄하는 권한을 가졌던 경략에는 고위 문관(文官)이 발탁되었으며, 명대 지방의 최고 장관이었던 총독(總督)과는 동등하고 총병(總兵)·순무(巡撫) 이하에게는 명령을 내릴 수 있는 높은 지위였다.

송응창은 평양과 한양(서울)을 수복한 공로에도 불구하고 벽제관 전투 패전 후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를 일본 국왕으로 책봉하고 영파(寧波)를 통한 조공을 허락하는 봉공안(封貢案)을 추진하였다. 이 과정에서 선조를 비롯한 조선의 관료들과 명 조정의 주전파(主戰派) 및 감찰을 담당한 과도관(科道官)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이 책은 송응창이 당시 일본과의 주화론자(主和論者)라는 명 조정 일각의 비판으로부터 자신을 변호하기 위한 목적에서 엮은 것이다.

송응창은 전쟁이 터진 직후부터 1593년 연말까지 명군의 활동이 가장 두드러졌던 시기에 명군을 총지휘한 인물이다. 전쟁 당시 조선 사람들은 평양과 서울 등에서 전투를 진두지휘했던 제독(提督) 이여송(李如松)이나, 명군의 참전을 앞장서서 주장했던 병부상서(兵部尙書) 석성(石星)을 찬양하며, 그들을 위한 생사당(生祠堂)을 세우기까지 했다. 그러나 실제 명군의 총책임자는 경략(經略) 송응창이었다.

그는 전선에서 빗발치는 병력과 물자 지원 요청, 그러나 북경의 미적지근한 반응 사이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4만여 명군은 물론 조선의 운명, 나아가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향배를 몸소 책임져야 하는 임무를 성실히 수행했다. 그는 북경의 황제와 고관들에게, 후방인 요동(遼東)과 산동(山東)의 지방관들에게, 전선의 사령관 이여송 및 그의 부하들에게, 그리고 조선의 국왕과 관료들에게 하루에 많게는 10여 통의 공문서와 사적인 편지를 보내 전쟁 수행의 모든 과정을 조율했다. 본국에서 병력과 물자를 최대한 끌어당기고, 전장의 장병들에게 죽음을 무릅쓰라고 독려하며, 조선 측을 어르고 달래가며 협력을 끌어내는 일 모두가 그의 붓끝에서 이루어졌다. 따라서 그가 쓴 문서를 모아놓은 이 책에는 송응창 한 사람뿐만 아니라 명나라가 짊어져야 했던 임진왜란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경략복국요편’의 국역사업은 중국 근세사 및 조선시대 전공자이자 명·청 및 조선의 외교문서 전문가들이 모인 한중관계 사료연구팀(책임연구원 구범진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이 맡아서 진행하였다. 이 팀은 국내에서 ‘경략복국요편’국역사업의 최고 적임들이라고 할 수 있다.

임진왜란은 조선과 일본뿐만 아니라 명나라까지 국력을 기울여 맞붙은 동아시아 국제전쟁이었다. 그러나 그동안 임진전쟁에 대한 연구는 한국과 일본 사료에 크게 의존하다 보니, 전쟁의 중요한 한 축을 맡았던 명 측의 역할과 그 영향은 충분히 살펴볼 수 없었다. 이번에 ‘명나라의 임진전쟁’을 간행함으로써 이제 이 전쟁이 띠고 있던 국제전쟁으로서의 모습을 여러 각도에서 더 입체적으로 파악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