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최대의 명절 한가위 ‘추석(秋夕)’
민족 최대의 명절 한가위 ‘추석(秋夕)’
  • 최하늘 기자
  • 승인 2018.09.20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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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 농사를 끝내고 오곡을 수확하는 가장 풍성한 가을, 9월이다. 가을은 우리나라 4대 명절 중 하나인 추석 명절을 맞이한다.

글자 그대로 가을 밤이라는 뜻의 추석(秋夕). 과거 우리 조상은 이맘때를 중추(中秋)나 월석(月夕)이라고 불렀는데 두 명칭을 합쳐 추석이라고 부르게 됐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또 추석을 한가위. 가위. 중추절. 가윗날. 가베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고 한다. "한"이란 크다는 뜻이고 "가위"란 가운데라는 의미를 가진다. 글자 그대로 하면 8월의 한가운데 큰 날이라는 뜻이다. 이처럼 해마다 맞는 추석이지만 올해는 추석에 담긴 의미와 유래에 대한 이야기에 관심이 전환 되고 있는 분위기다. 올해 색다른 추석을 맞아하기 위해 유래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추석의 유래와 의미>

추석의 유래는 지금부터 약 2000년 전 유리왕 때 부터 라고 한다. 유리왕은 백성들이 기쁜 마음으로 즐겁게 살기를 바라는 '도솔가'를 지어 부르게 했고, 여러 가지 산업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가 일으킨 산업의 한가지로 유명한 것은 길쌈이었다.

유리왕은 길쌈 장려를 위해 6부의 부녀자들에게 내기를 시켰다. 우선 6부의 모든 부녀자들을 두 패로 나누고 궁중의 왕녀 두 사람을 뽑아 두 패를 각각 거느리게 한 다음 해마다 7월부터 한 달 동안 베를 짜게 하고 8월 보름이 되면 어느 편이 더 많이 짰는지를 심판했다.

그래서 7월이 되면 부녀자들은 두 왕녀의 응원을 받으며, 열심히 베를 짜기 시작했고, 임금이 지어준 도솔가를 흥얼거리면서 밤을 낮 삼아 열심히 짜다보면 8월 보름은 금새 닥치는 듯 하고 마침내는 저마다 마음을 졸이며 그 동안 짜 놓은 베를 가지고 내기 장소에 나왔다.

유리왕과 왕비를 비롯한 궁중의 관리들이 나와 유리왕이 판결을 내리면 이긴 편에서는 환성을 지르며 덩실덩실 춤을 추었고, 진편에서는 그 동안 별미 음식을 마련해 이긴 편을 대접했다. 맛있는 송편, 기름에 지진 고기, 전 등 갖가지 별식과 밤, 대추, 머루, 다래, 배 등이 푸짐하게 마련되면 양편은 모두 둥그런 원을 그리며 둘러앉아 함께 먹고 노래와 춤을 즐겼다. 어두워지면 하늘에는 둥근달이 떠오르고 갖가지 놀이를 하면서 즐거운 밤을 보냈다. 서라벌에서는 이 날 8월 15일을 가배라 일컬었는데 이것이 '한가위'라는 신라의 큰 명절이 되어 계속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추석의 의의>

한가위는 고대사회에서부터 있었던 만월의 명절이다. 달의 고마움에 감사하고 달을 위했으며 떡을 해도 달떡을 했다. 달을 의식하는데 있어 중국에서는 만월을 상징하는 월형의 월병을 만들었으나 우리는 송편이라 해서 반월형의 떡을 했다. 얼을 숭상해 달에게 소원을 비는 민간신앙을 가지면서 반월을 채택한 것은 반월이 일일성하므로 발전의 상징으로 본데서 온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고대의 도성명에 반월성이 많은 것으로도 증명이 된다.

둘째는 만월야를 계기로 사람이 신에게 대한 제의가 있었다. 올게 심니를 해서 풍년에 감사하고 또 명년의 풍작을 기대했으며 밭고랑을 기는 행위도 소박한 기풍행위의 하나이다.

농경민족의 최대소원은 풍작을 이루는 일이기에 한가위를 기해 신에게 청하고 감사했다.

셋째는 오락을 풍성하게 했다. 풍작의 소원을 이루었고 포식하고 나니 할일은 놀이를 즐기는 일이다. 농부들에 의해서 소놀이, 거북놀이, 농악, 씨름이 행해지고 부녀자들에 의해, 강강술래, 학동들에 의해서 원놀이, 가마싸움 등의 놀이가 흥겹게 있었다. 이러한 놀이는 만월과 풍작을 즐기는 축제이기도 했다.

넷째, 한가위는 혈연간의 화목을 확인하고 추원보본의 실천의 계기가 됐다. 분산돼 사는 혈연들이 집결해서 협동하고 화목하며, 같은 조상의 제의에 참여하는 기쁨이 있었다. 효란 인간원래의 일이지만 명절을 맞아 천신하고 명전에 경건하게 절하므로 은혜를 생각하고 보답하려는 노력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귀성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유교가 들어와 생활화됨에 따라 강조된 것이라 믿어진다. 한가위를 명절로 여기는 민속은 외래적인 것이 아니라 고대사회에 있어 달고 관련 있는 것으로 전승돼 왔으며, 농경시대에 들어와서 기풍예측 풍작에 감사하는 의식이 첨가되고 유교시대에 들어 추원보본하는 조상숭배 의식이 마련됐을 것이다. 추속 풍속은 현대 사회에 있어서도 의미를 갖는다. 산업사회가 가족의 분산을 초래했으나 추석은 분산된 혈연이 집합하는 계기가 되고 따라서 혈연간의 협동과 화목을 다지는 핵의 구실을 하고 있다. 물질만능의 박정한 현대인들도 한가위가 되면 정이 솟아 친족에게의 선물과 조상에의 차례용의 제수 감을 사들고 고향을 찾고 있다. 여기에 우리 생활의 일명이 있어 좋다.

<추석의 풍습>

추석에는 추석빔을 입고 햅쌀로 빚은 송편과 여러 가지 햇과일·토란국 등 음식들을 장만해 추수를 감사하는 차례를 지낸다. 또한 맛있는 음식을 이웃과 다정하게 나눠 먹으며 즐거운 하루를 보낸다. 아무리 가난하고 어렵게 사는 사람도 함께 음식을 나눠 먹으며 즐겁게 보냈으므로 "1년 열두 달 365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라는 말도 생겨났다.

온갖 곡식이 무르익는 결실의 계절로서, 가장 밝은 달밤이 들어 있으며, 조상의 은혜에 감사하는 뜻으로 성묘를 드린다. 성묘 때 잡초를 베는 것을 '벌초(伐草)'라고 하는데, 벌초는 성묘 하루 전에 하 기도 한다. 추석 때는 여러 가지 행사가 펼쳐지며 놀이가 벌어진다.

소싸움·길쌈·강강술래·달맞이 등을 한다. 농악을 즐기는가 하면 마을 주민들끼리 편을 가르거나 다른 마을과 줄다리기를 한다. 잔디밭이나 모래밭에서는 씨름판이 벌어지는데, 이긴 사람은 장사(壯士)라 해 송아지·쌀·광목 등을 준다. 전라남도 서해안 지방에서는 추석날 달이 뜰 무렵 부녀자들이 공터에 모여 강강술래를 했으며, 닭싸움·소싸움도 즐겼다고 한다. 추석은 추수기를 맞이해 풍년을 축하하고, 조상의 은덕을 기리며 제사를 지내고, 이웃과 더불어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한국 최대의 명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