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광역학구제의 현실은
[기고] 광역학구제의 현실은
  • 노정민 장재초등학교 운영위원장 (전 학교운영위원회 진주회장·경남 부회장)
  • 승인 2022.02.16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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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민 장재초등학교 학교운영위원장 (전 학교운영위원회 진주지역협의회장·경남부회장)
노정민 장재초등학교 학교운영위원장 (전 학교운영위원회 진주지역협의회장·경남부회장)

며칠 전 여러 언론 매체를 통하여 작은 학교 살리기, 광역학구제가 통했다는 글을 보았다. 취지는 이러하다. 과대. 과밀학교를 해소하고 작은 학교 살리기를 위하여 광역학구제를 시행하여 동지역에서 인근 면지역 학교로 진학을 하면 “누이좋고 매부좋고”, “도랑치고 가재잡는 격”으로 일부 해소될 것이라는 전망이였을 것이다.

경남교육청에서 거론한 타 지역의 학교는 차치하고 진주지역을 살펴 보자.

지난 해 광역학구 지정으로 과밀학교인 장재초등학교 진학할 학생이 인근 면지역의 미천초등학교로의 진학을 기대하였고 사실, 지난해에는 학부모의 큰 기대로 20여명의 학생이 진학하는 나름 쾌거는 거뒀다. 그러나, 이번 신입생은 5명으로 광역학구제 효과는 미비하다.

마치, 작은 학교 살리기가 통했다며 성공 사례로 자화자찬처럼 비춰지나, 현 실상은 장재초등학교는 전교생이 1340명이며 신입생은 2022년 교육지침에 따라 1학급당 24명을 초과할 수 없어 현재 10개 학급이다. 1명, 2명이 인근 면단위로 진학한들 큰 수에서 의미는 적을 것이다.

이전 개교 후 1차에 걸쳐 증설로 학급은 39학급이나 현재는 55개 학급이다.

일반교실, 보통교실 등 만들 수 있는 곳은 전부 교실이 되었다. 이제 증설할 곳도 증설할 계획도 없다. 그러나, 공동주택의 추가 입주 계획과 도시계획을 통한 인구 증가는 불보듯 자명한데 어찌할지 허망함으로 부모된 도리로 죄책감이 든다. 예전이야 먹고 살기 바쁠 때라 교육열이 아닌 생계열정이 앞서고 학생수 또한 많았지만 현재는 매년 학생수가 상당히 감소하고 자녀에 대한 교육열도 상당히 높아졌다. 또 헌법이 보장한 교육의 기회 평등과 내 아이에 대한 형평적 교육을 받을 권리를 당연히 생각할 때이다.

콩나무 시루 같이 키울 때는 아니다. 똑같은 교육을 받을 의무와 권리를 바라는 당연하지만 너무나도 작은 마음일 뿐이다.

다양한 프로그램과 체험학습을 받을 기회는 사라졌다.

제비뽑기처럼 추첨기에서 당첨이 되어야 수업을 듣는 선택의 기회와 폭이 아닌 하나의 프로그램이라도 당첨되기만을 바라는 간절함이 이제 글을 깨치는 아이에게 당첨이라는 시쳇말로 “웃픈” 단어를 뇌리에 심어야 하는가.....

허나, 이는 학교 내에서 기회가 없으니 학원이라도 보내게 되므로 사교육을 조장하게 되는 더 문제를 낳는다.

원론적으로 해결하여야 한다. 도시계획으로 인한 인구 증가가 학생수에 미치는 파급치와 자녀를 가진 학부모의 여론을 존중하여야 한다고 필자는 희망한다. 사실, 장재초등학교가 이렇게 큰 학교가 될 것으로 예측을 하지 못한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분명 도시계획에는 5개 단지 분양계획이 정확히 나와 있다.

또 현재 추가 입주 계획인 단지의 경우는 바로 앞의 장재초를 두고도 위험한 신호를 몇 곳을 건너 등하교를 하는 초전초에 10학급 증설이 계획되어 있다.

도심공동화현상으로 인한 구도심의 학생은 감소하고 외곽 신도심은 학생수가 늘고 있음을 교육행정은 적극적으로 고민하기를 바란다.

쓴소리로 묻고 싶고 말하고 싶다. 광역학구제가 진정 모든 학교에서 통하였는가..

섣부른 성공사례 삼아 여론을 형성하기 전에 현실 직시와 학부모들의 여론을 정말로 귀담아 들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여론과 의견 수렴을 한 적이 있는가. 필자는 의견수렴이 아닌 대안책을 위한 하소연을 하러 다닌 적은 많다.

그러나 낮은 목소리인지 아니면 벽이 높은 건지 소통의 부재가 항상 같이 하였다. 필자는 대단한 교육열과 남다른 자식사랑도 아니다. 억지도 아니다. 또래들 만큼만 교육 받게 해달라는 것이다.

경남교육의 비전이 무엇인가!! “배움이 즐거운 학교”이지 않은가!

당연함이 간절함이 되어서는 건강한 미래교육이 되지 않을 것이다. 교육행정의 적극성과 더불어 배움이 더 즐거운 학교가 되었음하는 바람으로 필자는 아우성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