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 없는 인생, 품위 있는 이별 준비하기
후회 없는 인생, 품위 있는 이별 준비하기
  • 국민건강보험공단 하동남해지사 구휘윤
  • 승인 2022.02.11 10: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하동남해지사 구휘윤
국민건강보험공단 하동남해지사 구휘윤

이별을 생각하면 누구나 그러하듯이 가슴이 먹먹해진다. 특히 죽음앞에서는. 오늘도 우리 사무실에는 부부 세 쌍이 손잡고 오셔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고 가셨다.

유리칸막이 사이로 누렇게 빛바랜 주민등록증을 내밀며 주민등록증의 사진보다 수십 년 세월을 덧씌운 얼굴로 사뭇 엄숙한 눈빛을 한 채 자리에 앉으신다.

우리가 피해야 할 죽음 가운데 하나는 중환자실에서 임종을 맞이하는 것이다. 중환자실에서 말기환자는 자기결정권 없이 가족과의 이별을 준비하지 못하고 각종 기기와 수액병에 연결된 줄에 매여 있다가 죽음의 시간에 이르게 된다.

연명을 위한 치료비는 남은 가족에게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

특히 말기환자에게 편하게 호흡하도록 기도삽관을 하는 경우 오히려 의식이 있던 환자도 기도삽관 후 투여하는 진정제나 근육이완제 때문에 의사표현을 할 수 없게 되어 환자가 가족에게 작별인사도 못하고 떠날 수 있다.

심폐소생술을 시행해도 환자가 회복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상태에 있다면 환자의 신체에 불필요한 손상을 초래하는 심폐소생술을 하기보다 이별을 준비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가족에게 더 의미가 있을 수 있으므로 생각해 볼 일이다.

2018년 2월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연명의료결정제도는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의사를 존중하여 치료의 효과 없이 생명만 연장하는 의학적 시술(연명의료)을 유보하거나 중단할 수 있는 제도이다.

19세 이상 성인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을 방문하여 향후 자신이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되었을 때를 대비하여 미리 문서(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여 두는 것이다.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27일 기준으로 벌써 115만여 명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였다고 한다. 이에 따라 연명의료 중단 등을 결정하고 이행한 환자는 19만여 명이라고 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각 지역 보건의료기관이나 의료기관, 비영리법인 또는 단체에서 등록이 가능하며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공공기관으로서 전국 178개 지사에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이 가능하다. 작성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언제든지 변경 및 철회가 가능하며, 가족열람을 허용한 경우 연명의료정보처리시스템을 통해 열람할 수 있다.

한편, 연명의료결정제도가 안착하기 위해서는 접근성을 높여야 하는데 의료기관윤리위원회가 설치된 종합병원과 요양병원의 비율이 낮아 사각지대가 될 수 있다. 모든 의료기관윤리위원회가 설치된 상급종합병원 뿐만 아니라 종합병원과 300병상 이상의 요양병원에 의료기관윤리위원회의 설치를 독려하여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 놓은 환자가 본인 의사에 따라 연명의료이행 중단을 할 수 있도록 개선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나의 품위 있는 죽음, 죽음의 자기결정권에 대하여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이다. 고통과 고립 속에서 기적 또는 죽음을 기다리기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준비된 상태에서 당당하고 자연스럽게 생을 마감하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