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급한 말 한마디
성급한 말 한마디
  • 박도영 경상남도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 구성작가
  • 승인 2021.06.30 13: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도영 경상남도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 구성작가
박도영 경상남도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 구성작가

김해시 대동면에 ‘산해정’이라는 곳이 있다. 남명 조식 선생이 직접 건립하고 후학을 양성하던 곳으로, 그가 죽은 후 그의 제자들이 사당을 짓고 신산서원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제법 산속 깊은 마을에 있긴 하지만 풍경이 아름답고 정갈한 느낌이 드는 이곳에 얼마 전 우연한 기회로 가볼 수 있었다. 유명한 학자가 후학 양성의 보금자리로 선택한 곳은 풍경부터 남달라 보였다.

주변 풍경에 넋을 놓고 있는데 어디서 특이한 동물 소리가 들려 왔다. 분명 새 소리인데 거위나 닭, 오리와는 다른 고음과 특유의 리듬이 있는 소리였다. 깜짝 놀라 소리의 출처를 찾기 시작했다. 산해정 맞은편 아래쪽에 집이 한 채 있는데 그 집 주변을 맴도는 칠면조가 눈에 띄었다. 검정색 깃털에 빨간 볏을 가진, 덩치는 거위만 한 칠면조가 필자를 보더니 다시 그 괴상한 울음소리를 내며 공작새처럼 꼬리깃을 펼치고 몸 전체 깃털까지 부풀리는 것이 아닌가? 신기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해서 유심히 그 녀석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사람 손에 익숙해진 탓인지 사람을 겁내긴커녕 가볍게 무시한 채 혼자 유유자적 산책을 즐기는 모습에 살짝 황당하기도 했지만 공작새마냥 꼬리깃까지 부풀리며 특유의 경박스러운 울음소리를 내는 칠면조의 모습을 혼자 보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심스럽게 한발 더 다가가 휴대전화 카메라로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울 땐 언제고 촬영을 시작하니 울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마치 필자를 놀리듯 계속 꼬리깃만 펼쳤다 접었다를 반복하며 카메라를 노려보던 녀석을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한 번만 울어주라.”라고 애원하듯 말했다. 그런데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 경박하고 놀라운 울음소리를 들려 주는 칠면조! 갑자기 혼자 부끄러워져 급히 녹화 정지 버튼을 누르고는 그 자리에서 혼자 크게 웃고 말았다. 칠면조는 여전히 계속 주변을 돌아다니며 경박하게 울고 깃을 펼쳤다 접었다 하며 망중한을 즐기고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칠면조의 울음소리보다 더 경박한 것은 나 자신이었다. 성급한 말 한마디가 사람을 얼마나 가볍고 우습게 만드는 것일까? “한 번만 울어주라.”라고 애원하지 않았어도 때가 되면 그 소리를 들려줄 것을, 그 잠깐을 못 참아서 결국 입 밖으로 말을 꺼내고 말았다니, 경박하다는 말은 이럴 때 써야 하는 것인 듯하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성급한 말들로 가볍고 우스운 사람이 돼 왔을까? 굳이 하지 않아도 괜찮았을, 잠깐 기다리면서 그 사이에 한 번 더 생각했어야 할 수많은 말들이 이미 뱉어져 누군가에겐 상처가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상대를 무시하고 비웃게 할 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물을 아껴라, 시간을 아껴라, 돈을 아껴라……. 아끼라는 게 참 많은 세상에서 가장 먼저, 가장 많이 아껴야 할 건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