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시대, 언어유감
감염시대, 언어유감
  • 박도영 경상남도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 구성작가
  • 승인 2021.01.07 00: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도영 경상남도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 구성작가.
박도영 경상남도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 구성작가.

지난 2020년은 코로나19를 빼놓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새해를 맞이하기 전 2000년대에서 같은 숫자가 반복되는 해는 2020년 올해뿐이라며 온갖 특별함으로 세상을 들뜨게 하던 때, 코로나19는 천 년에 한 번 찾아오는 숫자보다 더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코로나19에 감염되면 고열과 호흡기 증상을 동반하듯 사회 곳곳 역시 감염병의 공포에 대한 신열을 앓는 듯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은 사람들의 말이다. 코로나19가 발생한 이후 거의 처음 듣는 말들이 매일 수많은 매체를 통해 쏟아져 나왔다. 팬데믹(pandemic), 언택트(Untact), 코로나블루(Corona blue), 포스트 코로나(Post Corona), 코로나케이션(Coronacation)……. 한 번쯤은 어디선가 보았거나 말해봤을 법한 이 단어들은 대체로 만들어진 지 1년도 채 되지 않는 신생 언어들이다. 심지어 이 중에는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것도 있다고 하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최근 가장 자주 접하는 단어인 언택트(Untact)는 우리나라에서 만든 신조어로 ‘접촉하다, 대면하다’는 뜻의 콘택트(contact)에 부정의 의미를 가진 접두어 ‘Un’을 붙인 것이다. 아마 지난해 최고의 유행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언택트’는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 김난도 교수가 매년 발간하는 ‘트렌드 코리아 2018’에 서 맨 처음 소개되었다. 김난도 교수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모 연구원이 비대면 기술과 산업을 통칭해 ‘언택트’로 부르자고 제안했으며, ”연구팀 전원이 이 용어가 매우 적절하다고 생각해“ 채택했다고 한다.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전 이미 만들어진 단어였고 그 전부터 조금씩 사용되고 있다가, 비대면이 필수인 상황과 맞물려 그야말로 폭발적 인기를 얻게 된 것이다. 어느 때부터인지 언택트라는 말을 한 번도 듣지 않은 날을 꼽기 힘들게 되었다. 언택트 시대, 언택트 교육, 언택트 서비스 등 이제 이 단어 없이는 코로나19에 대해 말하기도 어려울 정도가 되었으니 말이다. 이처럼 코로나19는 우리 생활 속 말의 온도까지도 비정상적으로 높이고 있다.

언어의 특성 중에 역사성(가역성)이 있다. 일종의 사회적 약속인 언어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음운이나 어휘 등이 생성, 성장, 소멸하며 변화하는 특성을 가진다. 코로나19의 대유행과 함께 등장한 ‘코로나체’ 역시 대부분의 신조어처럼 한껏 기세를 펼치고 있다. 사스나 메르스처럼 몇 개월 유행하다 잠잠해질 줄 알았던, 특정한 누군가에게만 피해가 생기고 사라질 줄 알았던 코로나19는 서서히 감염병의 생활화를 우려해야 할 상황에 우리를 던져 놓았고, 코로나체의 수명 역시 다른 신조어보다 길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이쯤에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과연 신조어를 처음 만들고 사용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인터넷이 일상인 현대 사회에서 재미있고 새로운 단어 하나 퍼 나르는 것이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지만, 도대체 누가 이처럼 번뜩이는 재치와 탁월한 조합으로 새로운 말을 만들어 내는가 하는 것이다. ‘언택트’처럼 특정 집단에서 만들 수도 있고, ‘급식체’처럼 특정 세대가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이를 세상에 널리 알리는 역할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것은 역시 ‘언론’이다.

그렇다면 언론은 왜 곧바로 이해하기 어려운 외래어와 때로는 출처조차 불분명한 신조어에 집착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대중과의 적절한 거리 두기를 통한 환상(여론) 조장’이라 말하고 싶다. 코로나체를 비롯한 대부분의 신조어는 외국어, 주로 영어다. 대중에게 가장 익숙한 외국어인 영어를 사용해 적절한 친근함을 주는 것으로 ‘이 단어를 접하고 있는 당신은 아주 대단한 사람입니다.’라는 착각을 하게 만듦과 동시에 ‘당신은 이 단어의 뜻을 얼마나 정확히 파악하고 있습니까?’라고 되물으며 매체와의 거리를 둔다. 대중 앞에 선 언론의 장벽이 얼마나 높고 단단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것이다.

언어에도 기득권층이 있다. 풍부한 언어를 사용할수록 사람들과의 소통이 원활해짐은 당연한 일, 요즘은 인터넷 사용이 자유로운 세대와 그렇지 못한 세대 간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것을 두고 ‘세대 차이’라 불러야 하는 때다. 인터넷을 통해 더 큰 전파력을 가지는 언론은 언어의 최대 기득권층이다. 이처럼 언어의 세대 차이를 줄일 수도, 폭발적으로 늘릴 수도 있는 것이 언론의 힘이다.

신조어는 응용 능력이 뛰어나 또 다른 신조어를 낳는다. 처음 하나를 만드는 것이 어려워 그렇지, 하나가 만들어진 뒤에는 수많은 신조어가 탄생한다. 물론 그중 가장 많은 사람에게 회자되는 몇 개만 살아남게 되지만 말이다.

코로나체 역시 그렇다. 코로나19가 대유행하는 시기에 만들어진 많은 단어 중 일부만이 코로나19가 종식된 후에도 널리 사용되고, 국어사전에 정식으로 등재되는 날도 올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고민해야 할 것은 이렇게 만들어진 신조어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얻고, 그들이 이해하며 사용할 수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이미 사람들 사이에는 언어적 균열이 생기고 있다. 언어의 기득권층이 되어 말의 권력을 누리느냐, 더 폭넓은 소통을 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냐에 관한 것, 언론에게만 책임을 돌릴 수는 없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여러 신조어가 만들어지는 것 자체를 막을 수는 없지만 좀 더 쉬운 표현으로 더 다양한 이들이 폭넓게 소통할 수 있는 말을 만들 것인지, 외래어를 넘어 외계어를 사용하며 언어의 기득권을 누리는 현재의 모습을 따를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