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문화원, 남해 의병대장 행적 발굴
진주문화원, 남해 의병대장 행적 발굴
정익환 의병대장 포상신청
  • 최하늘 기자
  • 승인 2020.08.11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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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창선 출신 의병대장 정익환 선생의 행적을 보고한 일본경찰 문건. (사진제공=진주문화원)
남해 창선 출신 의병대장 정익환 선생의 행적을 보고한 일본경찰 문건. (사진제공=진주문화원)

진주문화원(원장 김길수) 향토연구실장 추경화(秋慶和) 향토사학자가 광복절을 맞아 남해군 창선면 출신 의병대장 정익환(丁益煥)의 행적을 찾아 나선 지 수개월 만에 의병 활동상과 제적등본과 일제강점기 때 세운 사적비를 찾았다.

정익환(1848~1919) 의병장은 제적등본에 의하면 경남 남해군 창선면 가인리 606번지에서 1848년 5월 11일 태어났으며 1919년 3월 12일 별세했다.

경남도 경찰부장이 경무국장에게 보고한 문서에 의하면 융희 3년 서기 1909년 9월 20일 폭도(일제는 의병을 폭도라 칭한다) 수괴 혐의자 인치 관계의 건이라 보고문건에 나온다.

그 당시 지리산, 가야산 일원에서 의병들이 활동하던 때 1909년 8월 16일에 “하동헌병대 오장과 보조원 3명이 함께 출동해 폭도 정찰로 도내 남해군 창선면에 대하여 창선면의 수령으로 지목되는 정익환 전 이학당의 일부의 수괴로 현재 창선에서 神(신)과 같이 존경받는다설이 있으므로 폭도(의병)를 체포하려 할 때 주민 수 백 명이 정익환의 체포는 안된다 석방하라며 시위를 전개했다. 그러나 헌병 오장과 보조원 3명은 총으로 폭도 2명을 총살하고 2명을 중상케 하고 도주하려는 정익환을 잡아 하동 헌병대로 잡아 구금중”이라고 보고했다. 

남해군 창선면 장죽리에 있는 정익환 선생 사적비. (사진제공=진주문화원)
남해군 창선면 장죽리에 있는 정익환 선생 사적비. (사진제공=진주문화원)

결국 진주재판소에서 징역형을 받고 3년 만에 사면을 받아 석방됐다.

정익환은 무과 급제 후 사천 선진성에 파견대장으로 근무하며 대장이라는 칭호를 받았으며, 사적비는 1940년 4월 주민들에 의해 남해군 창선면 상죽리에 건립됐다.

진주문화원은 “창선면민들이 순서를 전해 경남도청 앞을 3년간 지켰다고 하며 정익환 대장이 지은 심심가 노래가 전해지는데 2018년에 부경대학교 고순희 씨가 지은 논문인 도세저항운동과 가사문학에 실려 있을 정도로 유명하지만 항일독립운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면서 “다만 세금납부를 반대한 단체 행동으로 착각한 것을 진주문화원에서 정확하게 찾아 새로 정리해 포상을 신청하게 됐다”라고 밝혔다.